인공지능은 이제 단순한 기술의 차원을 넘어, 인간 사회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은 의료 진단이나 금융 투자, 범죄 예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보다 높은 정확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실용적 효율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에 직면한다. 기계가 자율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시대에, 그 결과에 대해 인공지능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한가. 아니면 여전히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든 제도에만 책임을 귀속시켜야 하는가. 이 글은 인공지능의 자율성과 책임성 개념을 중심으로, 윤리, 법, 기술, 철학의 관점에서 이 복합적인 물음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1. 인공지능의 자율성과 판단 능력
인공지능은 주어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학습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도출하는 알고리즘 체계다. 최근의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때로는 인간이 미리 정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보행자를 인식하고 속도를 줄이는 과정, 인공지능 의료 시스템이 수천 건의 병력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는 과정은 모두 이 자율적 판단의 예시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율성은 인간과 동일한 도덕적 혹은 인격적 자율성과는 다르다. 인공지능은 의도, 감정, 책임감과 같은 내면 상태가 결여되어 있으며, 그것의 모든 판단은 결국 수학적 연산에 기반한 확률적 출력이다. 따라서 자율적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 주체가 곧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체가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2. 철학적 책임 개념과 기계의 한계
전통적인 윤리 철학에서 책임이란 의식적 의도와 도덕적 판단 능력을 갖춘 존재에게 부과된다. 칸트 철학에 따르면 도덕법칙을 따를 수 있는 자율적 이성이 책임의 전제 조건이며, 하버마스는 행위자의 정당한 이유와 설명 가능성, 사회적 정당성이 책임 판단에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인공지능은 책임 주체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들을 충족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으며, 윤리적 기준을 스스로 설정하거나 반성할 수 없고, 자신의 결정에 대해 도덕적 논변을 구성할 수 없다. 인간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하고 반성하거나 사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반면 인공지능은 그 판단의 논리를 수치화된 방식으로만 재현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도덕적 자율성은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철학적으로 인공지능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개념적으로 어려운 과제다.
3. 법적 책임 구조의 현주소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인공지능이 발생시킨 사고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귀속된다. 자율주행차의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때, 법은 차량 제조사, 소프트웨어 개발자, 시스템 운영자, 사용자 중 누구에게 과실이 있는지를 따져 결정한다. 인공지능이 직접 법적 주체가 되어 손해배상을 하거나 처벌을 받는 구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법이 행위자의 의도와 과실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공지능이 점점 더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할수록, 법적 책임의 귀속 구조도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진다는 데 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결정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을 때, 법은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술적·시스템적 기준을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에 직면하고 있다.
4. 인공지능의 ‘설명 가능성’과 책임의 조건
인공지능이 판단한 결과가 설명 가능해야만, 그 판단에 대한 평가와 책임 추궁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공지능, 특히 심층 신경망 기반의 모델은 ‘블랙박스’라 불릴 정도로 내부 구조가 복잡하다. 이는 시스템이 어떤 이유로 특정 결정을 내렸는지를 사용자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만약 인공지능이 의료 오진을 하거나, 부당하게 대출을 거부했을 때, 시스템의 결정 논리를 추적하고 분석할 수 없다면 피해자는 누구를 상대로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최근 연구에서는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이 책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핵심 요소로 강조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시스템 투명성을 높이고 사용자에게 최소한의 이해와 대응 권한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설명 가능성은 책임을 묻기 위한 기술적 전제이자, 윤리적 조건이라 할 수 있다.
5. 알고리즘 편향과 집단 책임의 구조
인공지능이 사용하는 데이터는 과거의 인간 활동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은 알고리즘에 그대로 학습된다. 채용 알고리즘이 특정 인종이나 성별을 불리하게 평가하거나, 범죄 예측 시스템이 특정 지역을 과도하게 감시하는 등의 사례는 기술적 오류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불평등이 반영된 결과다. 문제는 이와 같은 편향이 인공지능의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객관화’될 때, 오히려 차별이 강화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책임은 누가 지는가. 데이터를 수집한 사람, 모델을 설계한 개발자, 이를 승인한 기관 모두 책임 주체로 거론될 수 있다. 따라서 책임은 개인보다는 집단적, 구조적 책임의 형태로 접근해야 하며, 알고리즘 설계 및 운용 전 과정에 윤리 검토와 감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6. 인공지능의 권리와 의무 가능성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곧 어떤 존재가 ‘의무를 가진다’는 전제를 포함한다. 동시에 책임 주체는 일정한 권리를 보장받는 인격체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문제는 단순히 법적 조항을 추가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봇이 법적으로 재산권을 갖거나 계약 당사자가 된다고 가정할 때, 이는 단순히 법 기술의 문제일 뿐, 실제 도덕적 의미의 책임과는 거리가 있다. 인공지능에게 도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그것이 자율성과 반성능력, 고통 인식, 규범적 판단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이러한 요건을 갖춘 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책임은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사회 내부에서 조직되고 조정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7. 인공지능 책임성 확보를 위한 기술적 대안
인공지능의 책임 문제는 기술적 영역에서도 다각도로 논의되고 있다. 첫째, 인공지능 개발 단계에서 ‘책임 기반 설계’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의사결정의 경로를 추적 가능하게 만들고, 의도치 않은 오류에 대비한 안전 장치를 내장하는 방식을 포함한다. 둘째, ‘휴먼 인 더 루프’ 설계는 중요한 결정에서 반드시 인간이 개입하도록 하는 구조를 유지함으로써, 최종 책임을 인간에게 귀속시키는 원칙을 지킨다. 셋째, 인공지능 윤리 강령이나 국제 기술 표준은 개발자와 운영자에게 책임 규범을 부과함으로써, 시스템 오작동 시 인간이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러한 기술적 대안은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점차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책임 구조를 정립해가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8. 사회적 합의와 법제도의 진화 가능성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의 문제는 기술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와 법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법은 항상 시대의 기술과 가치에 따라 진화해왔으며, 과거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행위 주체들이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갖는 사례는 충분히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법인이나 국가처럼 인간이 아닌 주체도 일정한 책임을 질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자율성과 영향을 행사하는 인공지능에게 제한적 책임이나 의무를 부여하는 구조도 충분히 상상 가능하다. 다만 이는 기술 수준, 사회적 수용성, 윤리적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도출되어야 하며, 인공지능이 인간과 동일한 권리와 책임을 가진 존재로 등극하는 과정은 단기간에 실현될 수는 없다.
9. 책임이라는 개념의 확장: 인간 중심주의에서 생태 윤리로
지금까지 책임은 인간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라는 비인간적 주체의 등장은 책임 개념 자체를 재정의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인간만이 책임질 수 있다는 전제를 넘어, 책임을 하나의 ‘관계적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영향을 미치는 범위, 사회적 통합의 양상에 따라 책임의 수준과 형태가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논의는 책임의 주체를 인간 개체에서 벗어나, 시스템 전체, 나아가 인간-기계-환경의 복합적 관계망으로 확대해 이해하려는 생태 윤리학적 접근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인공지능에게 책임을 묻는 시대란, 우리가 책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책임 시대는 ‘가능성’이 아니라 ‘책임성’의 확장이다
인공지능에게 책임을 묻는 시대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단순히 ‘될까, 안 될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선택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점점 더 자율화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윤리와 법 체계를 보완하고 진화시켜야 할 필요에 직면해 있다. 기술의 자율성이 인간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교하고 넓은 책임 구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인공지능은 아직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책임이 회피되지 않도록 하는 인간의 제도적 상상력은 지금 이 순간부터 작동되어야 한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책임은 인간이 여전히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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