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자율주행차, 챗봇, 얼굴 인식 시스템, 추천 알고리즘 등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과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면서, 그로 인한 윤리적 문제도 점점 더 복잡하고 중대해지고 있다. 인간을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기계가 만들어낸 결정이 공정한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편향은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이러한 질문은 기술의 발전보다 더 절박한 속도로 던져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 윤리 기준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서, 우리 시대의 철학적, 정치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본 글은 이 질문을 중심으로, 인공지능 윤리의 형성 주체와 그 정당성에 대해 인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1. 인공지능 윤리란 무엇인가: 기술적 판단을 넘어선 인간적 질문
인공지능 윤리는 단순히 시스템 오류나 기능적 안정성을 다루는 기술 윤리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기계가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인간 간 관계에 끼치는 변화, 사회 전체의 가치 체계에 끼치는 장기적 파급 효과까지 고려해야 하는 총체적인 논의다. 예컨대 범죄 예측 알고리즘이 특정 인종에 대해 더 높은 위험도를 판정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오차가 아니라 구조적 편향을 내포한 윤리적 문제다. 이처럼 AI 윤리는 기술의 정확도나 효율성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존엄성, 평등, 자유, 책임과 같은 핵심 가치를 중심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즉, 윤리는 기술의 ‘부속물’이 아니라, 그 존재 방식과 사용 목적을 선행하여 규정짓는 근본적인 철학적 틀이다.
2. 현재의 AI 윤리 기준: 누가 만들고 있는가?
현재까지 인공지능 윤리 기준은 주로 기술 기업, 국제기구, 학계, 정부 기관 등의 협력 하에 형성되어 왔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Trustworthy AI)'이라는 윤리 프레임워크를 채택했으며, OECD는 회원국 간 공동 윤리 원칙을 제안했다. 민간 기업들 역시 자체적인 AI 윤리 강령을 발표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가이드라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문제는 이들 기준이 누구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느냐에 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만든 윤리 기준은 종종 시장 경쟁이나 법적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작동하며, 진정한 사회적 책임의 구현이라 보기 어렵다. 윤리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특정 집단의 시선과 권력 구조가 그것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3. 기술자 중심의 윤리: 전문성의 한계
인공지능 개발자나 공학자들이 윤리 기준을 설정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는 기술 중심 사고의 한계다. 이들은 알고리즘이 ‘작동하는가’를 중심으로 사고하며, 그 결과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고려한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의 효율성이나 예측 정확도는 높지만, 그것이 특정 사회 계층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면, 그 시스템은 윤리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따라서 윤리는 기술 내부에서만 구성될 수 없다. 오히려 윤리는 기술 외부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 사회의 맥락과 상호작용 속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즉, 윤리적 판단은 기술자의 전문성만으로는 부족하며, 사회과학, 철학, 법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통합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4. 국가와 정부는 윤리 기준의 적절한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정부나 국제기구는 법적 구속력과 제도적 권한을 가지고 윤리 기준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실제로 EU의 AI 법안이나 미국의 AI 책임 프레임워크는 공공 영역에서의 통제 필요성을 반영한다. 그러나 정부가 AI 윤리 기준을 설정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정치적 편향성과 관료적 경직성이다. 권위주의적 정권에서 AI는 감시와 통제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윤리는 오히려 기술 독재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위험이 있다. 또한 행정기관은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변화에 적시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윤리 기준의 직접적 창출보다는, 다양한 주체의 협의와 공론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5. 시민사회와 이용자의 참여: 윤리의 민주화 가능성
인공지능은 특정 전문가 집단만의 기술이 아니라, 전 사회 구성원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공공재적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윤리 기준 설정에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실제로 AI 챗봇의 혐오 표현, 추천 알고리즘의 여론 조작, 얼굴 인식 기술의 무단 수집 등은 일반 시민들이 겪는 직접적 피해와 불편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론적 윤리보다도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시민 참여형 윤리 기준 설정은 기존의 전문가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기술을 감시하고 조율하는 민주적 시스템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윤리는 제도화되기 이전에 ‘생활화’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의 집단적 토론과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6. 철학자의 시선: 윤리는 ‘누가’가 아닌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윤리는 특정 집단이 일방적으로 설정하는 명령이나 강령이 아니다. 윤리는 끊임없이 성찰되고 재검토되어야 하는 과정이자,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적 가치다. 즉, 윤리는 ‘무엇이 옳은가’를 규명하는 정적 기준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동적 담론이다. 따라서 인공지능 윤리 기준은 누가 정하느냐보다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즉 그 과정의 투명성과 포용성, 상호 존중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철학적 태도는 윤리를 도덕적 명령으로 고정시키기보다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는 열린 규범으로 만들어낸다.
7. 윤리 기준은 국가마다 달라야 하는가: 보편성과 지역성의 긴장
AI 윤리 기준을 논할 때 하나의 도전 과제는 바로 보편성과 지역성의 충돌이다. 예컨대 유럽은 프라이버시와 인간 존엄성을 윤리의 핵심으로 삼지만, 일부 국가들은 공공의 안전이나 효율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적, 정치적 배경이 다른 사회에서는 같은 기술이라도 그 윤리적 해석과 수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AI 윤리 기준은 일정 부분 보편적인 원칙을 가져야 하면서도, 각 지역의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정체성을 고려하는 유연함을 지녀야 한다. 윤리의 지역화를 무시한 글로벌 기준은 문화 제국주의로 전락할 수 있고, 반대로 지역주의에만 몰두하면 기술 공공성의 위협을 야기할 수 있다. 보편성과 다양성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 쌍두마차다.
8. 알고리즘의 공정성은 윤리 기준에 의해 보장되는가?
AI 윤리 기준은 기술적 공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된다. 알고리즘의 투명성, 설명 가능성, 비차별성 등은 모두 윤리적 가치에서 도출된 기술적 요구 사항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누가 윤리 기준을 설정하는가’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성별 편향이 있는 데이터셋으로 훈련된 알고리즘은 여성을 불리하게 평가할 수 있지만, 그 편향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판단되느냐에 따라 윤리적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윤리 기준은 단지 기술의 후속 조치가 아니라, 기술 설계 단계에서부터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윤리적 설계’로 발전해야 한다. 이는 윤리가 사후적 규제가 아니라, 사전적 설계 철학으로 자리 잡아야 함을 의미한다.
9. 인공지능 윤리는 법과 어떻게 다를까?
윤리는 법보다 먼저, 더 깊고, 더 넓게 작동해야 한다. 법은 위반에 대한 처벌을 전제로 하지만, 윤리는 법이 규율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포괄할 수 있는 내적 기준을 지향한다. 예컨대 법적으로 허용된 얼굴 인식 기술도, 특정 집단을 비정상적으로 타깃화한다면 그것은 윤리적으로 문제다. 윤리는 인간의 내면적 성찰과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규범이므로, 법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인간다움의 본질에 더 근접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AI 윤리 기준은 단지 법제화 여부를 넘어, 인간 사회의 방향성과 가치를 어떻게 조정하고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질문이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 윤리는 ‘모두’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인공지능 윤리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기술자만의 것도, 정치가나 법률가의 전유물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총체적 상상력이며, 따라서 다양한 집단의 협력과 견제가 필수적이다. 철학자와 기술자, 시민과 정책가, 기업과 비영리 단체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윤리적 기준을 고민하고, 실천 가능한 규범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는 단지 형식적인 다원주의를 넘어서, 실질적인 윤리적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작업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려면, 그 윤리 기준 역시 인간의 다면성과 복잡함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우리 모두가 참여하여 만들어야 할 미래의 사회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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