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흔히 ‘하늘의 정원’으로 불리지만, 실상은 땅의 생명력과 문명의 축적을 상징한다. 이 정원은 ‘하늘’보다 ‘대지’에 닮아 있는 이유를 문명사적, 건축사적, 상징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전설로 남은 정원, 그 실체에 대한 집요한 탐색
바빌론 공중정원은 기원전 6세기경,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디아 출신 아내를 위해 조성했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이 정원은 고대 그리스·로마 작가들의 기록에만 등장하고, 현재까지 정확한 위치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신화와 현실 사이의 건축'이라 불린다. 하지만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 설계, 농업 기술, 축조 방식에 대한 다수의 고고학 자료와 점토판 기록을 통해, 이 정원이 단순히 환상이나 하늘의 낭만적 풍경이 아닌, ‘대지의 구조물’로 기능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결국 바빌론 공중정원은 위로 솟구친 정원이 아니라, 수직으로 축적된 토지 개념이었다.
'공중'이라는 단어가 함정이다: 수직이 아닌 층층이 쌓인 ‘대지’
‘공중정원(Hanging Gardens)’이라는 명칭은 본래 고대 그리스어로 kremasto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매달린’ 혹은 ‘층층이 쌓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현대인이 상상하는 부양식 공중정원—즉,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이 아니라, 계단식으로 층을 이루며 축조된 구조를 뜻한다. 실제 바빌론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 기록과 수메르·아시리아의 구조물 도판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공중정원의 형상은 계단 형태의 테라스 위에 인공 토양과 수로 시스템을 얹은 구조였다. 따라서 이 정원은 하늘을 향해 솟은 것이 아니라, 땅을 위로 반복해서 재현한 인공 대지였다. 하늘의 상징보다 땅의 생명성과 밀도에 더 닮아 있다는 해석은 이 구조의 기원부터 확인된다.
정원의 목적은 천상의 모방이 아닌 타향의 대지 회복
바빌론 공중정원에 얽힌 가장 널리 알려진 전승 중 하나는,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메디아 왕국 출신 아내 아미티스를 위해 이 정원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메디아는 바빌론과는 달리 고지대에 위치한 지역으로, 계곡과 산, 숲과 물줄기가 풍부한 환경이었다. 반면 바빌론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건조한 저지대 평원으로, 메디아 출신 왕비에게는 이질적이고 척박한 환경이었다. 따라서 공중정원의 조성 목적은 ‘하늘의 이상향’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가 잃은 ‘고향의 땅’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이 정원은 회귀적, 감성적, 그리고 지극히 ‘지상적인’ 공간이었다. 즉, 하늘의 모사라기보다는 메디아의 숲과 계곡이라는 기억된 풍경을 층층이 쌓아올린 대지의 복제였다.
농경 문명의 기술, 정원을 떠받친 것은 ‘물’과 ‘흙’
바빌론 공중정원은 놀라운 토목기술의 집약체였다. 당시에는 펌프나 전기 없이 고지에 물을 끌어올려야 했으며, 이에 따라 아르키메데스식 나선 펌프의 초기 형태 또는 체인식 양수장치가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관개 기술은 단순히 물을 ‘하늘로’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수직으로 조성된 흙과 식물의 층—즉 인공 대지 위에 현실적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실용 기술이었다. 또한 무거운 토양과 수목을 지탱하기 위한 구조물로는 아치형 기단, 방수 포장재, 석회혼합 점토 등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든 것은 ‘공중’에 정원을 띄우기 위한 환상이 아니라, 물과 흙을 통해 실제 생명체가 자랄 수 있는 ‘지상 복제’를 가능케 하는 고도의 토목적 지식이었다.
바빌론 도시계획의 연장선으로서의 정원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가운데 가장 정교한 도시 설계를 보여준 도시 중 하나로, 직선의 거리, 대운하, 그리고 엄격한 축선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공중정원은 이 도시 설계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단지 왕궁 옆의 낭만적 공간이 아니라, 도시 내에서 물의 순환과 휴식, 통치자의 위엄, 기술의 시연이 한데 어우러진 실용적·상징적 복합 공간이었다. 정원이 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점 또한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는 자연과 인간, 건축과 생태가 분리되지 않고 일체화되어야 한다는 고대 문명 특유의 통합적 사유를 보여준다. 결국 공중정원은 하늘 위 이상향이 아닌, 인간의 도시 내에서 가능한 ‘최고의 대지’를 상징한다.
정원이 닮은 것은 ‘신의 정원’ 아닌 인간의 생산 공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는 에덴동산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딜문(Dilmun)’이라는 이상향이 등장한다. 그러나 바빌론 공중정원은 이와 같은 초월적 낙원을 모사한 공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직접 다듬고 쌓은 ‘생산적 정원’에 가깝다. 이곳에는 농작물, 약초, 관상용 식물 등이 자랐고, 이는 단지 심미적 목적만이 아니라 의약과 음식, 제사 등 다양한 실용적 목적에 쓰였다. 즉, 이 정원은 신의 영역을 흉내 낸 신화적 공간이 아닌, 인간 문명이 스스로 구축한 자급적 생태계였다. 이 점에서 공중정원은 하늘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땅의 집약이며 인간의 손으로 축적한 문명의 상징이었다.
‘높이’가 아니라 ‘겹’으로 읽어야 하는 공간
바빌론 공중정원에 대한 기록은 헬레니즘 시대 이후 문헌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지만, 이 정원을 ‘높이 솟은 공간’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고대 건축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당대의 건축은 수직 상승보다 수평 확장을 중심에 두었고, 높이보다는 ‘층위의 반복’이 강조되었다. 공중정원은 이러한 층층이 쌓인 대지 구조의 대표적 사례다. 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지구라트(ziggurat) 구조와도 상통하는데, 지구라트 또한 하늘에 닿기 위함이 아니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징적 축적 구조였다. 공중정원 역시 단일 축으로 상승하는 탑이 아니라, 다양한 층위의 땅을 복제한 구조로, ‘지층’의 시학이자 건축이었다.
정원이 남긴 것은 자연이 아닌 문명의 기억
오늘날 바빌론 공중정원은 실체 없는 유산으로 남아 있으나, 그 상상은 여전히 풍부한 해석을 낳고 있다. 정원의 본질은 하늘의 아름다움을 끌어오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 대지 위에 생명과 문명을 재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그 안에는 지리적 이주와 기억, 고향에 대한 그리움, 기술적 도전, 도시계획적 이상이 응축되어 있다. 다시 말해 공중정원은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다시 태어난 ‘땅’이었다. 이는 곧 고대 바빌론이 하늘보다 땅에 집착했고, 초월보다 축적에 집중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