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고대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중심 대로는 왜 ‘죽은 자의 길’이라 불릴까? 이 명칭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닌, 언어를 통한 권력의 은유이며, 도시 전체를 지배한 세계관과 정치 질서를 반영하는 상징 장치다.
대로 위의 침묵, 이름에서 시작된 해석
테오티우아칸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로는 오늘날 ‘죽은 자의 길(Calle de los Muertos)’로 불린다. 이 명칭은 스페인 식민지 시기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유적을 탐사하던 이들이 대로 양쪽에 늘어선 피라미드형 구조물을 무덤으로 오인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 구조물들은 대부분 신전이나 제의용 건축물이며, 유골이 발견된 흔적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이 명칭은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 하나의 ‘해석된 현실’을 고착시켰다. 즉, "죽은 자의 길"이라는 언어는 단지 공간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테오티우아칸이라는 도시 자체에 새로운 감각적·정치적 질서를 부여한 은유였다.
죽음의 도시인가, 질서의 도시인가?
‘죽은 자의 길’이라는 명칭이 주는 첫 인상은 음울하고 폐허적인 정서다. 그러나 테오티우아칸은 단지 무너진 고대 문명의 잔해가 아니라, 고도로 계획된 도시로, 기원후 1세기에서 7세기까지 중미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국가 중 하나였다. 약 4km에 달하는 이 대로는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 시민 주거지, 시장, 의식 공간 등을 연결하며, 사회의 구조와 의식을 물리적으로 통합했다. 다시 말해, ‘죽은 자의 길’은 도시의 동맥이었고, 시민의 삶과 제국의 권력이 동시에 흐르던 공간이었다. 그 길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순간, 도시의 본래 질서는 탈색되고, 외부 시선이 투영한 신화적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언어는 지배의 도구다: 명명(命名)의 정치학
도시를 어떻게 ‘부르는가’는 단순한 기술적 행위가 아니다. 명명은 곧 해석이며, 해석은 권력의 전유다. 테오티우아칸의 중심 대로에 ‘죽은 자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스페인 식민 통치자들의 무의식적 상상력의 반영이었다. 이들은 피라미드 구조를 ‘무덤’으로, 대로를 ‘망자의 행렬로 가는 길’로 해석함으로써, 미지의 문명에 대한 두려움과 우위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타 문명을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한 언어적 구조물의 구축이었다. 식민자의 언어는 그 도시의 정체성을 재구성했고, 결국 오늘날까지도 ‘죽은 자의 길’은 해석의 표준처럼 남아 있다.
‘죽음’이라는 메타포, 생존을 지배하는 전략
흥미로운 점은, ‘죽은 자의 길’이라는 명명이 역설적으로 그 길을 더욱 신비롭고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명칭은 죽음이 아닌 생존의 메커니즘을 강화한다. 고대 문명에 대한 상징적 권위를 부여받은 이 길은, 오늘날에는 관광과 교육, 정치 담론의 중심으로 재활용된다. 이는 ‘죽음’이 하나의 언어적 장치로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를 구성하고, 과거를 현재의 권력구조 안으로 끌어오는 수단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죽음을 말하는 언어가 삶을 지배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이는 권력이 언어를 통해 시간과 정체성까지 통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구조의 반복성과 권력의 시선
‘죽은 자의 길’을 따라 늘어선 피라미드와 플랫폼은 모두 반복적인 모듈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 구조적 반복성은 단지 미학이나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었다. 반복은 질서를 상징하며, 대로를 따라 행진하는 제의와 통치 행위는 이러한 반복 속에서 자신을 정당화했다. 이때 ‘길’은 단지 이동 경로가 아니라, 권위가 재현되고 시선이 연출되는 무대였다. 따라서 이 길에 ‘죽음’이라는 언어가 덧입혀지는 순간, 그것은 무덤을 지나가는 행렬이 아니라 ‘권력의 재현을 위한 제의적 퍼포먼스’로 재해석된다. 언어는 공간을 다시 쓰는 도구였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제의 장치
테오티우아칸은 우주론적 질서에 따라 설계된 도시다. ‘죽은 자의 길’ 역시 북쪽으로 기울어진 방향에 따라 조정되어 있으며, 이는 천체의 위치와 정렬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이 길은 하늘과 땅을 잇는 축선이며, 인간과 신, 통치자와 피지배자가 만나는 통로였다. 이러한 도시 설계 안에서 ‘죽은 자의 길’은 단지 죽은 자를 위한 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신과 우주의 질서를 따라 움직이는 상징 구조였다. 다시 말해, 이 길은 생과 사의 경계가 아닌, 순환과 질서의 경로였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은 이 길의 동적 기능을 마치 종결된 상태로 고정시켜 버린다. 이것이 바로 언어가 수행하는 은폐의 전략이다.
제국의 기억이 이름으로 휘감긴 순간
테오티우아칸의 진정한 비극은 물리적 멸망이 아니라, 해석의 틀이 단단하게 굳어버렸다는 데 있다. ‘죽은 자의 길’이라는 명칭은 해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 채, 고대 도시의 역동성과 다층적 의미를 하나의 상징적 프레임에 가둔다. 이 길에서 이루어진 무수한 제의, 권력의 연출, 시민들의 삶의 흔적은 ‘죽음’이라는 단어 하나로 납작하게 축소된다. 다시 말해, 언어는 권력과 기억의 벡터이며, 누구의 언어로 공간을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한 문명은 유산이 되기도 하고 유물이 되기도 한다.
언어는 길 위에서 권력을 말한다
‘죽은 자의 길’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그것은 외부의 시선이 안쪽 세계를 해석하고 지배하려는 언어적 은유이며, 권력이 과거를 소유하는 방식의 표현이다. 테오티우아칸의 대로는 죽음을 말하지만, 실상은 살아 있는 권력과 질서, 제의와 사유의 흔적을 품은 공간이다. 우리가 이 길을 다시 바라본다면, 그것은 단지 고대의 흔적이 아니라, 언어와 권력의 관계를 드러내는 하나의 철학적 질문이 될 수 있다. ‘죽은 자의 길’은 결국, ‘이 길을 누구의 말로 부를 것인가’라는 문제를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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